나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에는 정성껏 다례를 갖추지만, 여름철 집에서 혼자 차를 마실 때에는 주로 투명한 유리컵을 사용한다. 개완조차 잘 꺼내지 않는다.목이 조금 긴 유리컵에 80℃ 안팎의 물을 붓고 녹차 한 꼬집을 넣으면, 찻잎은 물 위에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우려내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는 어렵고 때로는 떫은맛도 나지만, 간편한 데다 찻잎이 물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그런데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보이차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20년 넘게 애지중지 길러 온 무명 자사호에 차를 우렸다. 이 작은 자사호에는 중국 자사예술의 거장인 고(故) 왕인선(汪寅仙) 대사와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다.왕인선 대사와의 만남왕인선 대사를 처음 뵌 것은 2005년 6월 무렵이었다.당시 나는..
나와 황차의 특별한 만남나와 황차의 첫 만남은 아쉬움이 가득했던 산행 길 끝에서 시작되었다.2008년 베이징에서의 오랜 주재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중국 생활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쓰촨성(四川省)의 아미산(峨眉山)을 선택했다. 중국 4대 불교명산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만, 내심 청두(成都)의 찻집과 거리에서 편하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마침 차에 조예가 깊은 경주 순금사(舜琴寺) 초안 스님께서 중국 성지순례 중이셨기에 기꺼이 동행길에 올랐다.그해 4월 말,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해발 3,000m가 넘는 금정(金頂)에 올랐다. 그러나 날씨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짙은 구름과 안개가 산을 뒤덮어 눈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대만 여행을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날까요? 야시장과 길거리 음식, 다양한 식도락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차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대만 여행에서 꼭 한 번 맛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차가 있습니다.바로 우롱차의 하나인 동방미인(東方美人, Oriental Beauty Tea)입니다.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미인’저와 동방미인의 인연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중국 샤먼에 사는 친구 덕분에 우롱차 가운데 먼저 무이암차인 대홍포(大紅袍)를 알게 되었고, 그 무렵 대만에는 ‘동방미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우롱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이름부터 마음을 끌었습니다.‘언젠가 대만에 가면 꼭 현지에서 마셔봐야지.’그렇게 생각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지난해 7월 출장차 드디어..
30여 년 전, 저는 베이징에서 우연히 용정차를 만나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국 샤먼으로 출장을 갔다가 말로만 듣던 대홍포(大紅袍)를 처음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처음에는 찻잎의 색에 눈길이 갔습니다. 얼핏 보면 검은색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두운 녹색과 갈색, 붉은색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차를 우리자 이번에는 향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아, 이 차는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좋아할 수 있겠구나.’그때 함께 있던 중국 친구가 설명해 주었습니다.“대홍포는 무이암차(武夷岩茶)의 하나이고, 청차(青茶)에 속해. 이런 계열의 차를 흔히 우롱차(烏龍茶)라고 하지.”대홍포, 암차, 청차, 우롱차…. 이름이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오늘은..
오래전 제가 베이징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일입니다.처음 찻가게에 들어갔을 때 선반 위에는 ‘녹(綠)·백(白)·황(黃)·청(靑)·홍(紅)·흑(黑)’이라고 적힌 차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그 모습을 보며 저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중국차는 색깔에 따라 나누는구나.”하지만 차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것이 단순한 색깔 분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대표적인 예가 홍차입니다. 중국에서는 붉을 홍(紅)자를 써서 ‘홍차(紅茶)’라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Black Tea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중국의 ‘흑차(黑茶)’는 영어로 Dark Tea라고 표현합니다.이처럼 이름만 보면 조금 혼란스럽습니다.그렇다면 중국의 6대 차는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일까요?핵심은 찻잎의 색이 아니라, 찻잎을 어떻게 ..
중국 황산은 한국 여행객들에게도 익숙한 관광지입니다. 하지만 황산까지 가서 산만 보고 돌아온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황산 여행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차까지 맛보아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황산 여행은 크게 산행과 하산 후 시내 관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에서 기암괴석과 운해, 소나무가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한 뒤 시내로 내려오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 툰시옛거리(屯溪老街)입니다.800m가 조금 넘는 옛거리 양쪽에는 휘파(徽派) 양식의 전통 건축물과 고풍스러운 찻집, 음식점, 특산물 가게들이 이어집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꼭 권하고 싶은 것은 현지 찻집에 앉아 천천히 차 한 잔을 마셔보는 일입니다.오늘은 황산을 여행한다면 한 번쯤 맛볼 만한 차를 소개해 ..
황산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황산에 오르고 나면 천하에 더 구경할 산이 없다.”명나라의 유명한 여행가 서하객(徐霞客)이 황산의 절경을 극찬하며 남긴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 그의 발자취를 따라 황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서하객은 평생 중국 곳곳을 여행하며 산천과 풍물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를 읽다 보면 차(茶)에 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감탄했던 황산의 차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궁금한 마음에 『유황산일기(遊黃山日記)』를 찾아 읽어보았지만 의외였습니다. 황산의 차에 대한 이야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황산에는 서하객과 차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
오늘은 토요일. 모처럼 느긋한 아침이다.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며칠 전 일본에 사는 동생이 보내온 조센차(上煎茶)를 꺼냈다.겉포장은 소박한 일본 전통 종이 포장이다. 그러나 안쪽을 열어보니 은박 포장으로 꼼꼼하게 밀봉되어 있다. 좋은 센차임에도 포장이 화려하지 않다. 대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 정성이 느껴진다.‘과연 어떤 향과 맛일까?’차를 우리려는데 마침 TV에서 중국 황산(黃山)이 나온다.그 순간 일본 센차를 들고 있던 내 머릿속에 엉뚱하게도 오래전 황산에서 만났던 차 한 잔이 떠올랐다.냉동실에서 망쳐버린 황산 모봉차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무렵, 나는 황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그곳에서 황산을 대표하는 녹차인 황산모봉(黃山毛峰)을 만났다. 서호용정(西湖龍井), 벽라춘(碧螺春)과 함께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