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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와 아미산
운무속의 아미산

나와 황차의 특별한 만남

나와 황차의 첫 만남은 아쉬움이 가득했던 산행 길 끝에서 시작되었다.

2008년 베이징에서의 오랜 주재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중국 생활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쓰촨성(四川省)의 아미산(峨眉山)을 선택했다. 중국 4대 불교명산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만, 내심 청두(成都)의 찻집과 거리에서 편하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

마침 차에 조예가 깊은 경주 순금사(舜琴寺) 초안 스님께서 중국 성지순례 중이셨기에 기꺼이 동행길에 올랐다.

그해 4월 말,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해발 3,000m가 넘는 금정(金頂)에 올랐다. 그러나 날씨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짙은 구름과 안개가 산을 뒤덮어 눈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데다 실망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스님께서 산기슭의 작은 찻집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차나 한잔하고 가지.”

찻집에 들어가 스님께서 차를 주문하셨다. 잠시 후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안개 때문에 산 구경을 제대로 못해서 많이 아쉬운 모양이네.”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잠시 후 차가 나왔다. 산행을 망쳤다는 아쉬움에 별생각 없이 첫 모금을 마셨는데, 뜻밖의 느낌이 혀끝에 닿았다.

‘이 부드러운 느낌은 뭐지?’

녹차와도 달랐고, 홍차나 우롱차에서 느끼던 맛과도 달랐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편안했다.

찻잔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차는 몽정황아(蒙頂黃芽) 이라는 황차야.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차라네. 녹차나 홍차 같은 유명한 차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 마치 안개에 가려진 저 산처럼 말이네. 안개가 걷히면 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일 걸세.”

그제야 나는 스님께서 왜 찻집에 들르자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것이 나와 황차의 첫 만남이었다.

황차는 어떤 차일까?

황차는 중국의 6대 차 분류 가운데 하나다. 녹차나 홍차에 비해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차다.

황차의 역사를 하나의 사건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옛 문헌에도 ‘황차’나 ‘황아(黃芽)’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당시에는 찻잎 자체가 노란색을 띠는 차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어 오늘날의 황차와 반드시 같은 의미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황차를 다른 차와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문황(悶黃)이라는 제다 과정이다.

찻잎을 살청한 뒤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덮어두면 찻잎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녹색이 점차 누런빛으로 바뀐다. 이 과정을 통해 녹차에서 느껴질 수 있는 풋내와 떫은맛이 한층 누그러지고, 황차 특유의 부드럽고 순한 풍미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황차의 특징을 흔히 ‘황엽황탕(黃葉黃湯)’, 즉 ‘노란 잎과 노란 차탕’으로 표현한다.

황차를 대표하는 차들

황차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차는 군산은침(君山銀針)이다. 후난성 웨양의 군산에서 생산되며 중국을 대표하는 명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밖에도 내가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쓰촨성의 몽정황아(蒙頂黃芽), 안후이성의 곽산황아(霍山黃芽) 등이 대표적인 황차로 알려져 있다.

황차의 향은 녹차의 싱그럽고 선명한 향과는 조금 다르다. 비교적 차분하고 온화하며, 잘 만들어진 황차에서는 은은한 단향이나 곡물과 비슷한 편안한 향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황차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맛이다. 쓴맛과 떫은맛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마신 뒤에는 은근한 단맛과 편안한 여운이 남는다.

안개 속에서 만난 차 한 잔

지금 생각해보면 황차와의 첫 만남이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단지 차 맛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중국에서의 오랜 생활을 마무리하던 시기였고, 마지막 여행에서 찾은 아미산 정상은 짙은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는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마신 따뜻한 몽정황아 한 잔 덕분에 나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차 세계를 만났다.

 

그날 나는 아미산 정상의 아름다운 풍경은 보지 못했다.
대신 안개에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차, 황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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