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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에는 정성껏 다례를 갖추지만, 여름철 집에서 혼자 차를 마실 때에는 주로 투명한 유리컵을 사용한다. 개완조차 잘 꺼내지 않는다.
목이 조금 긴 유리컵에 80℃ 안팎의 물을 붓고 녹차 한 꼬집을 넣으면, 찻잎은 물 위에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우려내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는 어렵고 때로는 떫은맛도 나지만, 간편한 데다 찻잎이 물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보이차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20년 넘게 애지중지 길러 온 무명 자사호에 차를 우렸다. 이 작은 자사호에는 중국 자사예술의 거장인 고(故) 왕인선(汪寅仙) 대사와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다.
왕인선 대사와의 만남
왕인선 대사를 처음 뵌 것은 2005년 6월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쑤저우의 졸정원과 한산사, 우전(烏鎮) 등을 둘러보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금사 초안 스님께 전화를 드려 중국에 오실 계획이 없는지 여쭈었더니, 이미 다른 일정이 있어 이번에는 함께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쑤저우까지 갈 예정이라면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중국 자사호의 고향인 이싱(宜興)도 찾아가 보라며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이 바로 왕인선 대사였다.
왕인선 대사는 중국공예미술대사와 중국도자예술대사의 칭호를 받은 자사예술의 거장이자, 이싱 자사도 제작기예의 대표 전승인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분이 자사예술계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여행 일정을 마친 뒤 대사의 공방을 찾아갔다. 공방의 정원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거장의 화려한 공간과는 달랐다. 키가 크지 않은 대나무 몇 그루와 작은 가산(假山)이 놓인 아담한 정원이었지만, 구석구석 정갈하고 단정했다.
대사는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예순두 살이었던 그는 겉모습만 보면 소박하고 평범한 여성이었다. 희끗희끗하지만 풍성한 머리카락과 안경 너머로 반짝이던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대사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歡迎光臨,我是汪寅仙.”
“어서 오세요. 왕인선입니다.”
자사호로 우려 준 보이차
공방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현관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작업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아담한 응접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작업실에서는 젊은 후학 두세 명이 말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응접실 역시 소박했다. 평범한 소파와 차탁, 그 위에 놓인 자사 다기 한 벌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리를 잡자 대사는 능숙하고도 우아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 주었다. 나는 강남의 명차인 명전 벽라춘이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자사호에서 우러난 차는 뜻밖에도 윈난의 보이차였다.
내가 벽라춘을 인상 깊게 마셨다고 말씀드리자 대사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웃으며 자사호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자사호는 열을 비교적 오래 머금고 차의 향미를 부드럽게 끌어내기 때문에 보이차와 우롱차, 일부 홍차처럼 비교적 높은 온도로 우리는 차에 잘 어울린다고 했다. 반면 어린 찻잎으로 만든 섬세한 녹차는 자칫 뜨거운 물속에서 오래 익을 수 있으므로, 유리나 자기 다기를 사용하면 찻잎의 상태를 살피고 온도를 조절하기가 한결 편하다고 했다.
내가 평소 녹차는 유리컵에, 보이차는 자사호에 우리는 것도 어쩌면 그날 들었던 가르침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이름보다 기본을 보라
자사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대사에게 작품 한 점을 소장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지금은 드릴 수 있는 작품이 한 점도 없습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차탁 위에서 사용하고 있던 자사호를 가리키며 그것은 어떤지 여쭈었다. 대사는 후학들이 공부하며 만든 것으로, 이름난 작품은 아니지만 기본을 지켜 만든 것이어서 차를 우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20여 년 전의 일이라 대사의 말씀을 한마디 한마디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다. 다만 그날의 가르침은 이런 뜻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장인은 정성을 다해 작품을 만들 뿐이고, 그것을 명기로 만드는 것은 사용하는 사람과 세월입니다.”
대사는 이싱의 자사호 시장에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본이 잘 갖추어진 호가 많다고 했다. 화려한 명성과 값비싼 낙관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실제 쓰임이었다.
손에 쥐었을 때 균형이 편안한지, 뚜껑과 몸통이 무리 없이 맞는지,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깔끔하게 끊기는지를 살펴보라고 했다. 지나치게 번들거리는 광택이나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호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좋은 자사호란 이름값보다 흙과 만듦새, 그리고 차를 우리기에 편안한 기본에서 출발한다는 뜻이었다.
80위안짜리 자사호가 나의 명기가 되다
대사의 작품을 직접 소장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공방을 나왔다. 이후 이싱의 자사호 시장을 둘러보다가 대사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며 자사호 하나를 골랐다. 당시 가격은 80위안이었다.
이름난 장인의 낙관도 없고 예술품으로 내세울 만한 화려함도 없는 평범한 자사호였다. 그러나 손에 편안하게 잡혔고 뚜껑의 맞물림과 물 흐름도 무난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살펴보고 선택한 첫 자사호였다.
그렇게 구입한 무명 자사호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아끼는 ‘애기(愛器)’가 되었다.
오랜 세월 차를 우리고 닦아 주면서 호의 표면에는 조금씩 은은한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대사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날의 가르침을 따라 고른 호였기에 나에게는 이미 하나의 작품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명기다.

고인을 기리는 마음
퇴직 후 차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득 20여 년 전 왕인선 대사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근황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대사가 2018년 2월 28일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던 눈빛과 자애로운 미소가 아련히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처럼 유리컵에 녹차를 우리지 않고, 오래된 보이차를 꺼내 나의 무명 자사호에 담았다.
자사호 뚜껑을 열자 묵직한 보이차 향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사진속에서만 보아 왔던 대사의 대표작이자 현대 자사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곡호(曲壺)에 관해 꼭 소개의 글을 지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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