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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을 따라 찾아간 찻집
여름 내내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 9월의 첫 주말인 어제는 하늘도 제법 높아졌고, 어느덧 가을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점심도 해결할 겸 우리의 수제 대추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인천 개항장을 찾았다. 목적지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동쪽에 자리한 수제차와 떡으로 유명한 찻집 ‘관동오리진(關洞五里珍)'이었다.
입구에 심어진 나무는 예전보다 훌쩍 자라 가지가 한층 풍성해졌다. 그 때문인지 간판이 나뭇잎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관동오리진은 일본식 목조 건물을 찻집으로 개조한 나지막한 2층 건물로, 현재는 1층만 영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정취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두 사람이 겨우 비켜 지나갈 만한 작은 현관이 나온다. 아담하게 꾸며진 현관을 지나 바로 앞의 미닫이문을 열면 비로소 찻집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홀에 들어서자 바로 앞 선반에는 책 몇 권과 백자 두 점이 무심한 듯 놓여 있었다. 그 뒤편에는 고풍스러운 원형 탁자가 자리하고 있었고, 오른쪽 구석에는 오래된 피아노 한 대가 보였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 샹들리에도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홀 가장 안쪽에는 대여섯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좌식 다다미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주방 카운터에서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밝은 미소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홀에서는 일흔 살 안팎으로 보이는 노신사가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1시 30분 무렵이었지만, 30~40명 정도를 수용할 만한 공간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창가 자리는 아니어도 비어 있는 2인석이 하나 있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따뜻한 공간
메뉴판을 펼쳐보니 수제 전통차뿐만 아니라 커피와 젊은 세대가 즐겨 찾을 만한 음료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나는 이 집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 수제 대추차와 영양떡을 간단한 점심으로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여성에게 대표인지 물었더니, 어머니가 대표이고 자신은 딸이라고 했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아버지도 함께 나와 서빙을 돕는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기 때문일까. 찻집 전체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손님들이 이곳을 부담 없이 찾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은근한 단맛이 오래 남는 전통 수제 대추차
얼마 지나지 않아 인자한 미소를 띤 노신사가 백자 찻그릇이 담긴 고풍스러운 나무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맛있게 들라고 인사를 건넸다.
대추차가 담긴 잔은 여느 찻잔보다 입구가 훨씬 넓었다. 백열등 불빛 때문인지 차의 빛깔은 진한 초콜릿색처럼 보였다. 그 위에는 얇게 썬 말린 대추 한 조각과 잣 일곱 알이 가지런히 떠 있었다.
따뜻한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대추 향이 출출했던 식욕을 자극했다. 작은 나무 숟가락으로 한입 떠서 맛보았다.
사람마다 느끼는 맛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내 입에는 먼저 옅은 쌉싸름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은근한 단맛이 입안에 오래 머물렀다. 대추 과육이 곱게 풀어진 듯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에서는 팥죽을 먹을 때와 비슷한 촉감도 느껴졌다.
이름보다 맛이 먼저 기억되는 영양떡
곁들여 나온 영양떡도 인상적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구워낸 듯 표면이 노릇했고, 칼로 자른 단면은 인절미 특유의 연한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포크로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었다. 먼저 살짝 질기면서도 바삭하게 구워진 겉면에서 고소한 기름 맛이 느껴졌다. 곧이어 인절미처럼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속살이 입안에 닿았다.
‘그렇지, 바로 이 맛이야.’
감탄할 틈도 없이 속에 든 또 다른 재료가 오독하게 씹혔다. 건포도나 견과류처럼 보이는 재료였다. 바삭함과 쫄깃함, 촉촉함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맛과 식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손님들은 그 뒤로도 계속 들어왔다. 나는 대추차와 영양떡을 천천히 맛보며 약 40분 동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 없는 떡에 담긴 어머니의 정성
계산하면서 수제 대추차도 좋았지만, 함께 나온 떡이 특히 맛있었다고 칭찬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맛있는 떡에 왜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영양떡’이라고 했는지 물어보았다.
딸의 설명에 따르면 대표인 어머니가 떡을 직접 개발하는데, 종류가 워낙 많아 일일이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고 했다. 판매하는 떡도 날마다 달라진다고 한다.
메뉴판에 소개된 몇 가지 떡은 메뉴판을 만들기 위해 대표적인 것만 골라 적어놓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카운터 옆 진열장을 살펴본 뒤 그날 준비된 떡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직접 고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날도 다음 날 판매할 떡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온 가족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차와 맛있는 떡을 먹고 찻집 문을 나섰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또 하나의 찻집
눈여겨보지 않으면 관동오리진은 간판조차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옆집 역시 오래된 일본식 목조 건물을 활용한 찻집이라는 점이다.
그곳은 관동오리진보다 높은 3층 건물이고 간판도 훨씬 눈에 잘 띈다. 두 찻집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바로 인천 개항장의 유명한 카페 ‘팟알’이다. 팟알이 자리한 건물은 개항기 일본 하역업체 대화조가 사무소 겸 주택으로 사용했던 근대 일본식 목조건물이다.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팟알 자체를 일본의 전통 찻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팟알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유명해졌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편 「인천 개항장 팟알」에서 이어가려 한다.
[방문 정보 요약]
상호명: 관동오리진 (Kwandong Origin)
주소: 인천 중구 신포로27번길 96
영업시간: 11:00 ~ 21:00 (라스트오더 20:30)
주말 및 공휴일은 운영 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사전 확인 권장
휴무일: 매주 화요일
주요 메뉴: 수제 대추차, 오미자차, 뱅쇼, 수제 영양떡, 오늘의 떡 등
주차: 전용 주차장 없음 (인근 신포공영주차장 또는 개항장 공영주차장 이용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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